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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38세의 텍사스 남자입니다. 하늘이 넓고 바람이 강한 텍사스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제 마음은 텍사스의 여느 사람들과는 조금 다르게 뛰고 있습니다.

제 마음속에는 이곳의 언어인 영어로는 다 표현하기 힘든 무언가가, 고요하면서도 뜨겁게 타오르고 있었습니다. 한국에는 이런 마음을 설명하는 단어가 있습니다. 정(情).

사랑, 애정, 깊은 유대라는 말로 표현할 수 있지만, 그 의미는 그보다 훨씬 더 깊습니다. 정은 말이 사라진 후에도 이어지는 마음의 끈이며, 아파도 남아 있는 따뜻함이고, 용서와 그리움이 함께 머무는 사랑입니다.

어릴 적부터 제 안에 자리 잡은 ‘정’이라는 불꽃은 언제나 조용히, 그러나 꺼지지 않고 타오르고 있었습니다.

주변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한 불꽃

어린 시절, 제 마음속의 ‘정’이라는 불꽃은 주변 사람들에게 종종 두려움의 대상이었습니다. 심지어 가족조차 그 불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어머니께서는 홀로 저를 키우시며 이해하고자 최선을 다하셨지만, 결국 제 마음속에 자리한 ‘정’을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하셨습니다.

그래서 여러 의사 선생님께 저를 데려가 상담을 받게 하셨습니다. 병원에서는 우울증, 아동기 외상, ADHD 등 다양한 병명으로 제 마음을 정의하며, “평생 약을 먹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 결과 저는 애더럴, 리탈린, 항우울제 등 수많은 약을 먹으며 자라났습니다. 그러나 그 어떤 약도 제 마음의 소리를 잠재울 수 없었습니다. 약은 제가 감정을 느끼는 것을 흐리게 만들었지만, 마음속의 ‘정’은 오히려 더 뜨겁고 강하게 불타올랐습니다.

그 불꽃은 분노가 아닌 열정이었고, 이해받지 못한 사랑이었습니다. 그때의 저는 그저 속으로 외쳤습니다. “제발, 어머니… 제 마음을 이해해 주세요.”

꺼지지 않았던 불꽃

어머니는 저를 사랑으로 대해 주셨지만, 그 불꽃인 ‘정’을 이해할 수 없으셨습니다.

제가 여섯 살이 되던 해, 어머니는 재혼하셨고, 새로운 아버지 또한 그 ‘정’을 이해하지 못하셨습니다. 그는 저를 “망가진 아이”로 보았고, 내 안의 불을 꺼뜨리기 위해 끊임없이 저를 깎아내리고, 자신감을 무너뜨리며, 때리고, 뺨을 치고, 발로 차는 폭력으로까지 저를 부수려 했습니다.

그의 학대는 단순한 체벌이 아니라, 제 마음과 목소리를 꺾어 다시는 제 자신을 표현하지 못하게 하려는 잔인한 통제였습니다.

그 결과 저는 어린 시절부터 말을 더듬기 시작했고, 그 더듬음은 성인이 되어서도 오랫동안 저를 따라다녔습니다.

세종대왕이 언어가 권력층에 갇혀 있던 시대에 백성들에게 목소리를 되찾아주었듯, 저 또한 어린 시절부터 침묵 속에 갇혀 있던 제 목소리를 되찾고자 갈망했습니다.

하지만 새 아버지는 결국 실패했습니다. 왜냐하면 그 불꽃인 ‘정’은 인간의 손으로 꺼트릴 수 있는 불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붙은 불, 고통 속에서도 더욱 밝게 타오르는 불이었습니다.

가장 어두운 밤일수록 저는 그 불빛을 더 선명히 보았습니다. 달빛조차 없는 하늘에 반짝이는 하나님의 사랑의 별빛처럼, 그 불꽃은 제게 속삭였습니다. “너는 혼자가 아니다. 흔들리지 말아라.”

정이라는 이름의 불꽃

세월이 흘러 성인이 되었을 때, 저는 마침내 그 불꽃의 이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정(情) 이었습니다.

그 불꽃은 여전히 제 안에서 살아 있었고, 더욱 커져갔습니다. 심지어 낯선 사람에게조차 깊은 연민을 느끼게 했으며, 때로는 그로 인해 상처를 받기도 했습니다.

사람들이 저를 이용하거나 거짓으로 대할 때도, 저는 그들을 미워하지 못했습니다. 그저 조용히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저 사람도 사랑해 주세요.”

제 마음은 미워하는 법을 몰랐습니다. 그저 사랑하고, 베풀고, 품는 법만 알았습니다.

축복이자 짐이었던 불꽃

정(情)은 아름답지만 위험한 선물입니다. 거룩하지만 강렬한 힘을 지닌 선물이지요.

정은 남을 치유할 수도 있지만, 그만큼 상처도 쉽게 받습니다. 순수하지 않은 마음을 가진 사람들은 제 정을 이용하려 했고, 때로는 선한 사람들조차 그 불꽃의 강렬함에 휘말려 상처를 입었습니다.

그래서 이제 저는 제 안의 정을 조심스럽게 지킵니다. 부끄러워서 숨기는 것이 아니라, 저를 오해하는 사람들조차 다치지 않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이제는 그 불꽃이 감정을 지배할 때 억지로 누르지 않습니다. 대신 하나님께 그 불꽃을 올려드립니다.

만약 제가 불타올라야 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품 안에서 — 사랑이 빛이 되고, 고통이 목적이 되는 곳에서 타오르길 원합니다.

은혜로 불타오르다

이제 저는 누구에게도 제 마음을 설명하지 않습니다. 어머니에게도, 의사에게도, 그리고 내 안의 한국적 영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미국 목사님에게도요.

왜냐하면 이제 압니다. 이것이 바로 제 마음이고, 제 정체성이기 때문입니다.

텍사스에서 태어나, 고통 속에서 단련되고, 사랑으로 정제되었으며, 한국에서 깨어난 한 영혼.

내 안의 정은 불꽃처럼 탑니다. 거칠지만 부드럽고, 뜨겁지만 충성스럽게.

저는 그 불꽃으로 세상을 태우려 하지 않습니다. 세상을 밝히고자 합니다.

인정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위해서.

이 불꽃이 내게 주어진 것이라면 — 저는 기꺼이 은혜로 불타오를 것입니다